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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소로 그래핀 3배 더 빨리 만든다…그래핀 성장속도 최고기록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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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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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진, 불소 주입 통해 분당 12㎜씩 초고속 성장 성공[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국내 연구진이 초고속 그래핀 성장법을 개발했다.
국소적 불소 주입을 통한 초고속 그래핀 성장 원리.
메탄(CH4) 분자가 기체상에서 불소에 의해 쉽게 치환이 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CH3F 및 CH2F2 분자가 Cu 필름과 BaF2 사이에 존재한다. 이 분자들은 구리 필름 위에서 쉽게 불소와 탄소 원료(CH3, CH2, CH, C)로 분해되며 그래핀 성장의 원료로 사용된다. 그림=IBS.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펑딩(Feng Ding) 그룹리더(UNIST 특훈교수)팀이 중국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불소(F)를 주입해 기존보다 3배 빠른 속도로 그래핀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최고 속도다.

원자 두께의 2차원 소재는 얇고 잘 휘면서도 단단한 특성을 지녀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로 크게 만드는 것이 난제다. 대면적 제작에 성공한 물질 자체가 드문데다 대면적화에 성공하더라도 긴 제조 시간으로 인해 사실상 상용화는 어려웠다.

물성이 우수한 2차원 소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조시간 단축이 급선무다. 지금까지는 원료물질을 바꾸거나 온도를 조절하는 등 제조환경 자체를 바꾸는 방법이 시도됐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그래핀의 성장을 완전히 제어 할 수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동연구진은 그 해결책으로 불소에 주목했다. 전기음성도가 높아 반응성이 좋은 불소를 합성 과정에 적용하면 2차원 소재의 빠른 합성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불소기체를 곧바로 주입할 경우 반응성이 큰 불소가 다른 물질과 결합해 독성물질을 생성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공간적으로 제한된 부분에서만 국소적으로 불소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우선 연구진은 대표적인 2차원 도체물질인 그래핀 성장에 불소를 적용했다. 일반적으로 그래핀 성장에는 화학기상증착(CVD)법이 쓰인다. 이는 금속기판 표면에 메탄가스(CH4)를 주입하며 메탄 속 탄소(C) 원자가 금속기판에 흡착하는 식으로 그래핀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금속기판으로 불소를 함유한 금속불화물(MF2)을 사용하고 이 위에 얇은 구리(Cu) 필름을 올린 형태의 기판을 제작했다. 그리고 온도를 높여 불소가 금속불화물로부터 방출되게 했다. 불소는 금속불화물과 구리 필름 사이의 10~2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의 매우 좁은 공간에서만 머물게 된다. 불소가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도록 일종의 장벽을 세워 가둔 것이다. 이 틈 속에서 불소로 인해 메탄가스는 더 분해가 쉬운 형태의 기체(CH3F, CH2F2)로 바뀌고 최종적으로 그래핀은 더 손쉽게 원료인 탄소를 얻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공동 제1저자인 루 치우(Li Qui)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연구원(UNIST 박사과정생)은 “메탄분자와 불소가 반응해 생긴 기체들은 매우 분극화 돼 있어 더 쉽게 분해되고 이로 인해 탄소 공급이 가속화돼 더 빠르게 그래핀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은 그래핀을 분당 12㎜의 속도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보고된 그래핀 성장 최고속도였던 분당 3.6㎜ 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다. 가령 기존에 면적 10㎠ 그래핀 제조에 10분이 소요됐다면 개발된 기술로는 이 시간을 3분 정도로 단축할 수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대표적인 2차원 부도체 물질인 육방정계 질화붕소(h-BN)와 반도체 물질인 텅스텐이황화물(WS2) 성장에도 적용해 본 결과 그래핀과 마찬가지로 주입된 불소가 성장속도를 크게 단축함을 확인했다. 불소가 다양한 2차원 소재들의 성장 속도를 가속하는 상용화의 열쇠임을 증명했다.

펑딩 그룹리더는 “2차원 물질의 성장 과정에서 불소를 국소적으로 주입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상용화의 걸림돌이 되던 성장속도 문제를 해결했다”며 “불소와 같은 반응성이 좋은 물질들로 다양한 2차원 물질을 더 향상된 속도로 합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7월 16일 0시(한국 시각) 게재됐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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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한신대 대책 마련 착수
1909년 중국 북간도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한인 교회이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인 김약연(1868~1942·사진) 목사가 시무한 명동교회가 건물 붕괴 우려로 폐쇄 조처된 것을 확인했다. 문재린 문익환 문동환 삼부자(父子) 목사를 배출한 명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신대의 본향과도 같은 곳이다. 기장 교단은 즉각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 있는 명동교회 전경. 건물 밖 십자가는 철거된 지 오래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 입구의 명동교회를 찾았다. 1916년 당시 ‘간도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김 목사가 8칸짜리 기와집을 올려 건축한 예배당이다. 100년 넘은 교회 건물 앞에 있던 십자가는 철거돼 사라졌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지붕엔 잡초가 자라고 있었고 창살은 배불뚝이처럼 휘어져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창문으로 들여다본 실내엔 텅 빈 곳에 십자가가 새겨진 강대상만이 남아 이곳이 교회임을 증명했다.

창살이 둥글게 휘어져 붕괴 위험을 드러낸 예배당 모습.
현지 안내원은 “장마철 비가 새고 있고 무너질까 무서워 우리도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진입을 막았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관계자도 “그동안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 관리를 명동촌 조선족 주민들이 하다가 공산당 측이 한족들로 안내원을 바꾼 이후부터 교회는 사실상 방치돼 왔다”면서 “건물 붕괴 우려로 지금은 교회당을 비우고 유물을 ‘윤동주생평전시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2012년부터 거액의 예산을 들여 윤동주 시인의 생가 주변을 확장해 ‘명동윤동주생가’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제에 저항한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를 기억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명동교회와 다른 교회 공동체의 항일 투쟁 역사는 방치하거나 지우기 바쁘다. 이날도 20여명의 한족 공산당원들이 7월 중국 공산당 창립을 맞이해 사상 강화 답사회를 열며 명동교회는 건너뛰고 윤동주 시비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명동교회 예배당을 건축한 김약연 목사는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등이 나온 명동학교 교장을 겸직했고, 캐나다 선교부가 세운 은진중학교와 명신여학교에서도 이사장을 역임했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은진중 교목이었다. 강원용 서울 경동교회 원로목사와 한국전쟁 흥남 철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 등 피난민 9만여명을 살린 현봉학 박사 역시 은진 출신이다. 명동교회 김 목사는 1919년 3월 13일 당시 북만주 일대 한인 다수가 참가한 3·13 룽징 반일시위의 실제적 지도자였다. 평양신학교 출신인 김 목사는 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본이 서둘러 침략하는 걸 보니 서둘러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42년엔 “나의 행동이 바로 나의 유언”이란 말을 남기고 룽징 자택에서 별세했다.

기장 총회 사무국장 이승정 목사는 “한신대가 김약연 기념사업회와 함께 학생들을 용정(룽징)으로 순례를 보내고 있었는데 교회 건물 상황은 전혀 몰랐다”면서 “대학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룽징(중국)=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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